서 론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제4조와 제14조에 따르면 장기 기증에는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장기 기증, 사망자로부터의 장기 기증, 뇌사자로부터의 장기 기증이 있다. 그런데 살아 있는 사람으로부터의 장기 기증은 그 기증할 수 있는 장기의 범위가 극히 제한되고, 사망자로부터의 기증은 사망 직후 장기 보존을 위한 특별한 조치가 취해지기 매우 어렵기 때문에 부패로 인해 실제로 이식가능한 장기가 매우 제한된다. 이에 비해 뇌사자 장기 기증은 기증의 범위가 매우 넓다는 특징을 지닌다. 왜냐하면 뇌사자 장기 기증은 대개 갑작스런 사고나 뇌혈관 질환으로 뇌사판정에 이르고, 이후 본인이나 가족에 의해 기증 의사가 밝혀지고 승인 여부가 결정될 때까지 외부적 생존 장치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즉, 외부장치를 통해 제한적으로 신체기능을 유지하면서 장기를 보존하므로 기증할 수 있는 장기의 범위가 매우 넓기 때문에 기증의 효과란 관점에서 보면 뇌사 후 장기 기증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1].
국내의 뇌사 기증자는 2000년 52명에서 2015년 501명으로 점차 증가하는 추세에 있지만 2015년 말 기준 장기 이식 대기자는 27,444명으로 수요 공급이 크게 불균형한 상태로서 대기 중 환자가 사망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2,3].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여 여러 선행 연구들은 뇌사 후 장기 기증 확대를 위해 장애 요인을 규명하고 기증의 증대방안을 모색해 오고 있다[4–6]. 본 연구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면서, 장기 기증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서 특히 “신뢰”의 문제를 살펴 보고자 한다. 왜냐하면 뇌사 후 장기 기증은 일반화된 신뢰(이하 일반신뢰) 및 정부신뢰와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신뢰는 어린아이와 양육자 간의 상호작용을 통한 애착을 기초로 형성되어, 일상생활의 잠재적 위협과 위해를 차단하여 사회관계에서 자존심, 용기, 자신감, 사랑과 관용 등과 같은 시민적 덕목을 양성할 수 있게 한다[7]. 시민적 덕목의 핵심 요소가 되는 신뢰는 좋은 공동체 건설의 기본 요건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여러 학자들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신뢰에 주목한 학자들은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신뢰가 있을 때 공공이익을 위한 사회적 협동이나 합리적인 집합행동이 가능해지고, 이를 토대로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시장경제가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본다[8].
신뢰연구자들 사이에서 신뢰유형이나 그 개념정의가 명확하게 합의되어 있지는 않지만 대체로 사적 신뢰와 공적 신뢰 혹은 대인신뢰와 제도신뢰로 구분된다[9]. 사적 신뢰 혹은 대인신뢰는 사람에 대한 신뢰로서 특수신뢰와 일반신뢰를 말한다. 구체적이고 동질적인 집단 내부에 국한된 신뢰가 특수신뢰라면 동질적인 집단을 넘어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며 자신도 잘 알지 못하는 타자에까지 확대된 신뢰를 일반신뢰라고 한다. 즉, 합리적 계산에 기초하지 않으며 잘 모르는 일반사람들의 선의에 대한 믿음, 혹은 잘 알지 못하는 타자가 동료 인간에 대해 도덕적 의무감을 가지고 그에 따라 행위할 것이라는 일반화된 상호성의 규범이 일반신뢰이다[9,10]. 따라서 일반신뢰는 모든 공동체 구성원에 대해 배타적이 아니라 개방적이고 포용적으로 접근하도록 하며 시민상호 간에 협력행동을 가능하게 한다[11]. 이것은 일반신뢰가 상호 지켜야 할 의무감에 대한 사회적 의식이나 감각을 지니지 못하고 자기본위적이고 자기중심적으로만 계산하는 개인을 변화시켜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사회적 관계에 관한 생각을 공유하도록 하여 공공선에 대한 감각을 지닌 공동체 구성원이 되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는 뜻이다[12].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4조는 기증자를 다른 사람의 장기 등의 기능회복을 위하여 대가 없이 자신의 특정 장기를 제공하는 자로 규정한다. 이에 따르면, 뇌사 후 장기 기증은 기증자 본인이나 기증자 가족이 잘 모르는 낯선 사람에게 자신의 혹은 사랑하는 이의 장기를 대가없이 주는 행위이다. 일부 선행연구들은 익명의 타인을 위해 자신의 혹은 가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호혜성이나 신뢰로부터 나오는 행위로 규정한다[6,13–16]. 사람은 누구나 호혜성이 없는 사람을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호혜성은 신뢰와 불가분의 관계이자 통합된 일부이다[10]. 따라서 얼굴도 모르는 추상적인 타인에게 자신의 장기를 기증하는 행위는 일반신뢰에 근거한 행위로 볼 수 있다. 따라서 기증자나 그의 가족이 알지 못하는 타인을 위해 장기를 기증하는 뇌사 후 장기 기증은 일반신뢰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대표적인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뇌사 후 장기 기증에는 제도신뢰 혹은 공적 신뢰 또한 깊이 관련되어 있다. 제도신뢰 또는 공적 신뢰는 한 사회의 기본적인 게임의 규칙에 대해 공유된 신뢰로서 제도화된 질서의 정당성과 관련되고, 경험적 차원에서는 국가, 시장, 시민사회의 주요 조직이나 규범에 대한 신뢰를 말한다[17]. 국가에 대한 신뢰는 연구 관심에 따라 정치적 신뢰, 정부신뢰, 정치적 지지 등의 용어 속에 연구되어 왔는데[17], 장기 기증은 정부신뢰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기증된 장기를 법률에 의거해 정부가 관리하고 이식이 필요한 사람에게 배분하는 역할 또한 정부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정부신뢰는 “정부에 대하여 국민이 갖는 긍정적 태도” 혹은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긍정적 평가”이다[18]. 이것은 정부가 시민 또는 국민의 뜻에 보다 일치하며 공익에 충실하도록 공공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한다는 믿음을 뜻한다[19]. 높은 정부신뢰는 정부정책이나 공적인 문제에 대해 시민참여를 이끌어냄으로써 민주정치에 기여하고 정부의 정당성을 강화시킨다[9]. 정당성이 없는 정부, 곧 신뢰받지 못하는 정부는 시민의 협력을 끌어내기 어렵게 됨으로써, 사회정의나 공공선과 같은 공동체 전체 차원에서의 합리성을 촉진할 수 있는 안정적이고 협조적인 정치사회적 질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12].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 제6조에서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장기 등의 이식이 필요한 모든 사람에게 이식받을 기회를 공평하게 보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장기 등의 이식에 관한 사항을 적정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장기이식관리기관을 두도록 규정했다. 이 법에 따라 국립장기이식관리센터(Korean Network for Organ Sharing, KONOS)가 출범하고 장기이식사업을 정부가 관리하면서 장기를 관리하고 배분한다. 따라서 장기 기증자의 관점에서 보면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공정하게 행위할 것이라는 믿음이 장기 기증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주 중요한 영향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정부가 기증자의 선의에 부응하여 공정하고 투명하게 행위할 것이라는 믿음이 없다면 사후 장기 기증은 할 수 없을 것이다.
이처럼 정부신뢰와 일반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이러한 신뢰요인들이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는 일반신뢰와 정부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보고자 한다. 이를 통해 신뢰부족이 장기 기증을 제한하는 문제점을 더 정확히 이해함으로써, 문제점의 해소에 기여하고, 뇌사 후 장기 기증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 정책개발의 기초자료를 제공하고자 한다.
연구 방법
연구대상자
본 연구에서 사용한 자료는 2016 한국종합사회조사(Korean General Social Survey, KGSS)의 자료이다. 2016년 KGSS의 모집단은 전국의 가구에 거주하는 만 18세 이상의 성인 남녀로서 모두 1,052명이 수집되었다. 이 가운데 뇌사 상태 시 장기 기증 의사에 대한 설문에 응답하지 않은 52명이 제외되고 1,000명이 최종분석 단계에 포함되었다.
자료수집방법
KGSS는 성균관대학교 서베이리서치센터가 2003년부터 시행한 전국단위의 표본조사로서 한국사회와 국제사회의 비교연구가 가능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세계 40개국이 참여하는 국제사회조사연합(International Social Survey Programme, ISSP) 모듈의 공동문항과 동아시아 사회조사(East Asian Social Survey, EASS) 항목을 포함하면서도 한국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설계되었다. 본 연구에 포함된 신뢰관련 문항들은 ISSP 모듈의 공동문항이다.
KGSS의 구체적인 자료표집 과정은 사회과학자료원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으므로[20]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기로 한다. 조사 시기는 2016년 6월 27일에 시작하여 11월 23일에 완료되었다.
연구도구의 구성
종속변수: 뇌사 상태 시 장기기증 의사
본 연구의 종속변수는 뇌사 상태 시의 장기 기증 의사로서 “만약 귀하가 뇌사 상태가 된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장기를 기증할 의사가 있으십니까?”라는 단일문항으로 구성하였다. 이 질문에 대해 ‘있다’ 또는 ‘없다’로 응답하도록 하였다. 장기 기증 의사 있음이 1이 되도록 리코딩한 후, 사용하였다.
독립변수: 일반신뢰, 정부신뢰
독립변수는 일반신뢰와 정부신뢰이다. 일반신뢰는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며, 자신이 잘 모르는 타자에게로 확대된 신뢰를 말한다. “귀하는 일반적으로 사람들을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으로 측정하였다. 답변은 조심해야 한다 0, 신뢰할 수 있다 1로 리코딩하여 사용하였다. 정부신뢰는 정부가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운영되고 있는가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부의 힘이 특히 강한 특성을 가지므로 행정부에 대한 신뢰를 정부신뢰로 측정하였다. 중앙정부부처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을 어느 정도 신뢰하는지 질문하였다. 이에 대한 응답은 신뢰하지 않음과 신뢰함이 0, 1이 되도록 리코딩하여 사용하였다.
통제변수: 사회인구학적 변수
본 연구는 사회인구학적 변수로서 성별, 나이, 학력수준, 가구총소득, 결혼상태를 포함했는데, 이 변수들이 선행연구들에서 장기 기증 의사에 영향이 있는 변수들로 밝혀졌기 때문이다[21–24]. 이들 변수와 함께 본 연구는 본인의 주관적 건강강태를 포함했는데 자신의 건강상태에 대한 인식이 장기 기증 의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성별은 남성 0, 여성 1인 더미변수로, 결혼 상태는 유배우자 상태(기혼 및 동거), 무배우자 상태(사별, 이혼 및 별거), 미혼으로 구분한 후 기혼을 기준으로 더미(dummy) 변수화하였다. 학력은 고졸 미만, 고졸, 대졸(전문대 포함) 이상으로 구분하여 고졸 미만을 기준으로 더미 변수화하였으며, 월평균 가구총소득은 0–149만 원, 150–299만 원, 300–599만 원, 600만 원 이상으로 구분하고 0–149만 원을 기준으로 더미변수로 사용하였다. 연령은 청소년기본법의 청소년나이(만 9–24세 이하)와 기초연금법 및 노인장기요양보험의 노인나이(만 65세 이상), 중고령층(만 50–64세)에 대한 논의를 참조하여[25], 18–24세 이하, 25–49세, 50–64세, 65세 이상으로 구분하고 18–24세 이하를 기준으로 더미 변수화하였다. 본인의 건강상태는 ‘① 좋은 편이다, ② 보통이다 ③ 안 좋은 편이다’의 3점 척도로 범주화하여 ①을 기준으로 더미변수로 사용하였다.
분석방법
본 연구의 종속변수인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가 이분변수로 구성되어 있어 일반선형회귀분석에 필요한 오차의 정규성 가정에 위반되므로, 이러한 가정이 필요 없는 이분형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모든 분석은 SPSS 19.0 (IBM Co., Armonk, NY, USA) 프로그램을 사용하였다. 2016 KGSS는 모집단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 표본설계를 통해 표본을 추출하고, 2015 인구센서스 자료를 참조하여 성, 연령, 지역, 도시성에 대해 가중치를 부여하였다. 이에 본 연구의 모든 분석은 연구 설계를 고려하여 가중치를 반영하여 분석하였다. 그러나 2016 KGSS는 복합표본 분석을 위한 계층과 군집 변수를 제공하지 않아 복합표본 분석을 실시하지는 않았다.
연구대상자들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은 빈도분석을 한 후, 가중치 미적용 경우의 빈도 및 퍼센트와 적용한 경우의 퍼센트 및 평균을 제시하였다. 연구대상자의 특성에 따른 장기 기증 의사 차이를 검토하고자 교차분석을 실시하였다. 이어서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대한 사회 인구학적 변수들의 영향을 통제한 후 일반신뢰와 정부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미치는 효과를 알아보기 위해 이분형 로지스틱 분석을 실시하였다.
연구결과
연구대상자의 특성
본 연구에 포함된 변수들의 범주, 빈도 및 비율(%)을 살펴보았고, 그 결과를 Table 1에 제시하였다. 연구 대상자의 성비는 여성이 54.8%로서 2016년 인구센서스 통계에 비해 여성(여성 50.13%)이 약간 많이 표집된 편이다[26]. 연령은 18–24세 이하가 10.1%인 데 비해 65세 이상이 16.6%로서 2017년 8월 기준으로 고령사회에 진입한 우리나라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결혼 상태는 배우자 있음(동거포함)이 58.7%, 배우자 없음(사별·이혼 ·별거)이 16.3%, 비혼이 25%이었다. 교육은 고졸 미만이 24.2%, 고졸이 24.6%, 대졸(전문대 포함) 이상 51.2%로서 대학졸업 이상자가 가장 많았다. 가구소득은 149만 원 이하가 21.2%, 150–299만 원이 18.6%, 300–599만 원이 36.6%, 600만 원 이상이 23.7%였다. 본인의 건강이 보통이라는 응답이 22.3%, 좋다는 범주가 55.7%로서 대체로 보통이거나 좋은 편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일반신뢰는 신뢰 있음이 43%에 불과해 과반수 이상이 일반신뢰가 없는 상태였다. 정부신뢰는 신뢰함이 53.6%로서 신뢰한다는 응답이 과반수를 넘었다. 장기 기증에 대해서는 응답자들의 71.9%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가 있다고 응답했다.
Table 1.
관련변수들의 특성에 따른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의 차이
관련변수들의 특성에 따른 장기 기증 의사 여부를 비교하기 위해 교차분석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Table 2에 제시하였다. 교차분석 결과 성별과 일반신뢰에 따른 장기 기증 의사에서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나이, 결혼 상태, 학력, 총소득에서는 p <0.001 수준에서, 건강과 정부신뢰에서는 p <0.01 수준에서 차이가 나타났다. 나이가 많아질수록 장기 기증 의사가 아주 조금씩 하강하다가 65세 이상 집단에서는 뚜렷이 낮아졌다. 배우자가 있는 집단이나 비혼 집단에 비해 배우자 없는 집단(사별, 이혼, 별거)의 장기 기증 의사가 낮았다. 학력수준이 올라갈수록 장기 기증 의사가 높아졌고, 소득이 높아질수록 장기 기증 의사가 높아졌다. 대체로 건강하지 않다고 인식하는 집단(63.7%)보다 건강하다고 인식하는 집단(77.2%, 76.5%)에서 장기 기증 의사가 높았다. 정부신뢰가 없는 집단에 비해 정부신뢰가 있는 집단의 장기 기증 의사가 유의미하게 높았다. 일반신뢰가 없는 집단보다 일반신뢰가 있는 집단의 장기 기증 의사가 높았지만 통계적으로 유의하지는 않았다.
Table 2.
일반신뢰 및 정부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미치는 영향
일반신뢰와 정부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고자 로지스틱 회귀분석을 실시했다. 분석의 결과는 Table 3과 같았다.
Table 3.
신뢰변수 가운데 일반신뢰는 유의하지 않았고, 정부신뢰만이 유의성을 나타내 정부를 신뢰할 때 장기 기증 의사가 1.63배(95% CI: 1.18–2.25) 높아졌다.
사회인구학적 변수들 가운데 성별과 교육수준만이 통계적 유의성을 드러냈는데 남성에 비해 여성이 장기 기증 의사가 높았고, 고등학교 미만 학력 보유자들에 비해 대학교 졸업 이상 학력 보유자들의 장기 기증 의사가 2.13배(95% CI: 1.03–3.28) 높았다. 이밖에 다른 사회인구학적 변수들은 통계적 유의성을 드러내지 않았다.
고 찰
이 연구는 20016년 KGSS 자료를 활용하여 일반신뢰와 정부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해 보고자 하였다. 일반신뢰와 정부신뢰의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대한 관계성을 분석하기 위해, 사회인구학적 요인과 주관적 건강요인을 통제하였다.
로지스틱 분석에서 사회인구학적 변수들 가운데 성별과 교육수준만이 유의미한 관계를 나타냈다. 선행연구들에서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대한 사회인구학적 변수들의 영향력은 일관된 양상을 보이지 않는다. 일부 연구[21,24]에서는 결혼상태만 영향을 미친 반면에 성별, 연령, 건강상태가 영향을 보인 연구[22]도 있다. Cho [27]의 연구에서는 나이와 가구소득이 유의한 영향을 보였고, Franklin et al. [23]의 연구는 나이, 학력, 가구소득이 효과를 나타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사회인구학적 변수들의 효과에서 차이가 나타나는 원인은 본 연구결과의 수준에서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다만 분석에 사용된 방법-교차분석, 회귀분석, 로지스틱 회귀분석-이나 연구모형의 차이, 나아가 연구모형에 포함된 변수들의 차이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추론된다.
일반신뢰와 정부신뢰의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대한 영향은 일반신뢰의 경우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났고, 정부신뢰는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집단보다 신뢰하는 집단의 장기 기증 의사가 1.63배(95% CI: 1.18–2.25) 높았다.
본 연구에서는 타인의 선의를 기대하며, 자신이 잘 모르는 타자에게로 확대된 신뢰를 의미하는 일반신뢰가 장기 기증 의사와 유의미한 관계성을 드러내지 못하였다. 일반신뢰가 관계성을 드러내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이러한 결과는 본 연구대상자들의 일반신뢰 수준이 낮은 것과 관련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본 연구에서 일반신뢰의 평균은 0.43으로서 잘 모르는 타자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응답자들이 과반수를 넘고 있다(57%). 이처럼 전반적으로 일반신뢰 수준이 낮기 때문에 장기 기증 의사에 일반신뢰가 영향을 나타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둘째, 매우 조심스럽지만 뇌사 후 장기 기증이라는 행위가 일반신뢰보다는 다른 특성과 더 관계성을 갖기 때문이 아닌지 생각된다.
서론에서 신뢰의 핵심적 구성부분이 호혜성임을 언급하였다. 사전적 의미에서 호혜는 서로 특별한 혜택을 주고받는 일이다. 사람은 누구나 호혜성이 없는 사람은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호혜성은 신뢰와 불가분의 관계이자 통합된 일부임을 지적하였다[10]. 이 지점에서 눈여겨 볼 점은 호혜성이나 일반신뢰 모두 상대방에 대한 기대를 포함한다는 점이다. 호혜성은 관계에서 느끼는 “도덕적 의무감”이며, 관계당사자들이 도움(피해)을 되갚음으로써 그러한 의무감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를 포함한다. 신뢰 역시 상대방에 대한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Mayer et al. [28]은 신뢰를 “상대방을 감시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관계없이, 상대방이 자신에게 중요한 어떤 특별한 행동을 수행할 것이라는 기대에 의거하여 상대방의 행동에 따른 자신의 취약성을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이처럼 호혜성이나 일반신뢰 모두 나의 선의에 대해 익명의 타자가 선의로 행위할 것에 대한 기대를 함축한다.
이에 비해 뇌사 후 장기 기증은 기증자 자신이 이미 사망한 상태이므로 더 이상 상대방의 선의를 기대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일반신뢰나 호혜성과 차이가 나는 지점이 있다. 물론 동료 인간의 호혜성을 믿고 동료 인간을 신뢰할 때 대가 없는 기증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반드시 수혜자의 어떤 선의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존재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적어도 현재의 조건에서 뇌사 후 장기 기증은 일방적인 이타주의 정신이나 희생정신 혹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인간의 선한 도덕적 품성에서 발생하는 행위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뇌사 후 장기 기증이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는 선하고 값진 행위임을 알려주는 장기 기증에 대한 교육이나 홍보가 매우 큰 힘을 발휘할 것임을 예측할 수 있다. 여기에서 불필요한 오해를 피하기 위해 다음 두 가지 점을 언급해 두고자 한다. 첫째, 이러한 논의가 우리사회에 일반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정부신뢰와 함께 일반신뢰가 존재하기는 하지만 일반신뢰가 낮은 수준이어서 장기 기증 의사에 유의한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둘째, 뇌사 후 장기 기증과 일반신뢰가 관련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뇌사 후 장기 기증 행위는 신뢰나 호혜성과 관련이 있는데[6,13–16], 적어도 현재의 우리 현실에서 일반신뢰 수준이 낮아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별 영향이 없는 상황에서 이타주의가 장기 기증과 관련성을 보이는 것으로 추론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 때문에 호혜성이나 일반신뢰의 부족이 뇌사 후 장기 기증의 저조와 연결된다는 선행연구들의 논의는 여전히 유효하고 이런 현실이기에 더욱 호혜성이나 일반신뢰를 함양하기 위한 노력이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정부신뢰는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 때 장기 기증 의사가 1.63배 높아진 것이다. 정부신뢰에는 정부 능력에 대한 신뢰와 정부의 도덕적 이행에 대한 신뢰가 포함되어 있는데[29], 뇌사 후 장기 기증과 관련해서 보면 정부의 도덕적 이행이 보다 중요하게 관계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뇌사자 장기 기증 경우, 기증자가 기증 의사를 밝히면, 누구에게 어떤 장기를 기증할지는 정부, 곧 KONOS에서 결정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장기 기증과 장기 이식에서 정부가 일을 잘 수행했는가라는 정부능력에 대한 질문은 곧 정부가 공익을 위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일을 처리했는가라는 질문이 된다. 따라서 현재의 시점에서 정부의 공익성, 공정성, 투명성과 같은 도덕성에 대한 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결과는 우리나라의 장기 기증이 가족 간 이식이라는 생체 이식은 예외적으로 높은 반면 뇌사 후 장기 기증이 낮은 이유를 이타적이고 공공적인 사회시스템을 구성하지 못한 것에서 찾는 선행연구[6]의 논의와 부합된다.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정부에 대한 신뢰가 중요한 영향이 있는 만큼 장기 운용 체계를 공익을 위해 이타적이며 투명하게 운영하고, 또 그러한 실행이 이루어지고 있음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획득이 장기 기증의 확산에서 가장 중요한 일로 판단된다.
신뢰 연구자들 사이에는 일반신뢰가 정부신뢰를 촉진한다는 주장[30]과 정부신뢰가 일반신뢰를 촉진한다는 주장[31]이 공존한다. 본 연구의 조사 자료는 우리사회에 일반신뢰가 크게 부족하여 정부신뢰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뇌사 후 장기 기증 문제와 관련된 현실적 차원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장기 운용에 대한 신뢰, 곧 정부신뢰를 통해 일반신뢰를 함양할 필요가 있음을 뜻한다. 나아가 정부가 장기 기증 제도를 공익을 위해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하는 책무 이외에 정부제도나 시민적 교육 등을 통해 시민사회의 이타성, 호혜성, 일반신뢰를 함양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책임 또한 지고 있음을 시사한다.
결 론
본 연구는 일반신뢰와 정부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미치는 영향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분석결과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대해 일반신뢰는 관련성이 없고 정부신뢰만이 관계성을 보였다. 일반신뢰가 관계성이 없게 나타난 것은 대체로 일반신뢰가 낮은 현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해석하였으며 이런 조건에서 뇌사 후 장기 기증은 일반신뢰보다는 이타주의나 희생정신 등과 관련될 가능성이 있음을 제안하였다. 일반신뢰와 달리 정부신뢰는 뇌사 후 장기 기증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정부가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여 기증 장기를 잘 운영할 것이라는 신뢰가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일반신뢰가 저조하며, 장기 기증에 별 영향력이 없는 반면에 정부신뢰가 분명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은 뇌사 후 장기 기증에서 정부의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선, 이타적이고 공공적이며 공정한 장기관리의 제도화가 장기 기증을 활성화할 것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음으로 현재 일반신뢰가 저조한 가운데 정부신뢰만 장기 기증 의사에 영향을 미치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정부신뢰(이타적이고 공익적이며 공정한)를 통해 일반신뢰를 함양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정부제도의 중요성에 주목해야 함을 언급하였다. 마지막으로 일반신뢰가 저조하여 일반신뢰나 호혜성보다는 일방적 이타주의나 희생정신 등이 장기 기증과 관련되고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장기 기증 교육과 홍보에서 이러한 상황을 참작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하였다.
본 연구의 제한점으로는 종속변수인 뇌사 후 장기 기증 의사가 예, 아니오의 이분범주로 구성되고, 독립변수인 일반신뢰나 정부신뢰가 모두 단일문항으로 구성되었다는 점이다. 인간의 생각은 단순하게 양분하기 어려우며, 신뢰 역시 다양한 차원들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본 연구에서는 뇌사 후 장기 기증 문제에서 경계선에 위치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다양한 신뢰의 차원들이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앞으로의 연구에서는 보다 정교한 측정도구를 통해 보다 복잡한 현실의 문제점들을 포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